Enchanted.
1.
당신을 알기 전에는 애정을 품는다는 것이 남의 이야기인줄만 알았다.

대학교 때는 이런 일이 있었다.  같은 학회에서 가깝게 지내던 이성 친구가 있었다. 

그때 학회 일을 우리 둘이 가장 열심히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깝게 지냈고, 지금 생각하면 후배들이 우리 둘 사이의 분위기를 가깝게 만들려고 분위기를 조성한 것 같기도 하다.  어느날, 학회 술자리에서 분위기에 휩쓸려 '좋아하는 것 같다'라고 털어놨고, 며칠 후 정중하게 거절당했다.  

그때 머리속에 처음 심정은 '당연한 일이다' 라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었다.  그 때 '오케이' 됐더라도 아마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으리라.  그 친구에게 느낀 건 말 그대로 '참 좋은 사람이다' 라는 호감뿐이었지, 그 사람을 원한다는 마음은 그다지 없었으니까.  말하자면 되면 좋고, 안 되도 그만?

그 후로?  당연히 좋은 친구로 지냈다.  아쉬울 것도, 마음 아플 것도 없었는데 뭘 어색해 하겠는가.

어떤 선배가 나를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한 때는 그 쪽에서 나에게 가깝게 다가왔지만, 멀지 않아 그냥 흐지부지되었다.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정중하고 친절하지만, 그 뿐인 태도로 일관했으니.  

언제나 그랬다.  냉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모습.  



2.
커플들을 보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는, 저들은 항상 불필요한 행동을 한다는 점이었다.  시덥지도 않은 일에 전화하고,  쓸데없는 문자를 주고받고, 혼잡한 길거리를 걸어갈 때에도 계속 손을 잡고. 

딱히 "저 쌍것들을 갈라놓아야!" 라는 질투심이 든 것은 아니지만, 부럽다거나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홀로 유유자적하게 돌아다니는 것이 좋았으니까.  



3.
처음에, 당신에게 품은 감정은 '존경'이었다.  

취미에 관련된 당신의 글과 생각을 읽으면서 참 멋진 사람이라고 느끼고,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같은 취미를 가진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내가 모르는 것을 당신에게 배우고 싶었다.

처음에 당신에게 메신저로 1:1 대화를 걸었을 때, 그 기분은 마치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팬레터를 건네주는 팬의 심정이었다.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그렇게 당신과 첫 대화를 나누게 되고, 다행히 우리 둘은 썩 이야기가 잘 통하는 것 같았다.

비록 모든 부분에서 취향과 생각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이야기를 하는 데에 더 즐거웠다.



4.
언제부터인가 취미 이야기 뿐만이 아닌, 당신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언제부터 당신의 취미 포스팅보다는 개인적 생각과 느낌을 담은 포스팅 쪽을 더 많이 보게 되었고,

마침내 '당신을 좋아한다'라는 마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오프라인 상으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인데.  나도 참 엉뚱하기도 하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이었으니까.



5.
내 친구 왈.  "최악의 타이밍에 고백했네."

근데 그 때 당시는 '반드시 이 때 고백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당신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주고 싶었기도 했고, 혹은 외로움을 느낄지도 모르는 당신에게 접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음험한 생각을 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눈치 코치 모른채 '에라 모르겠다' 라고 돌진한 것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 모든 이유가 복합적으로 뒤섞인 것일 수도 있고.



6. 
당신을 처음 오프라인으로 만났을 때 얼마나 가슴이 떨렸는지.

계단 앞에서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 보고 실망하지 않을까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당신을 만났을 때, 온라인 상에서 볼 때와는 또 다른 당신의 매력을 느끼고 얼마나 두근댔는지. 



7. 
나중에야 알았다.  처음에 당신이 완곡하게 거부를 했다는 걸.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때 나는 당신의 마음을 제대로 눈치채지 못했다.  워낙 눈치코치가 없는지라.

(알아차렸더라도, 내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 자신하지만!)



8.
당신이 "우리 사귀어 볼래?" 라고 말했을 때.  가슴이 얼마나 두근댔는지 당신은 모를 걸.

단지 그 한 마디만을 들었을 뿐인데, 그때부터 하루 동안 당신을 생각하는 시간이 얼마나 늘었는지 모를 거야.

그때서야 이해하게 됐어.  왜 연인들이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고, 데이트를 하고, 기타 등등 "귀찮은 짓"을 나서서 하는지.
 
그게 행복하니까.  상대와 접촉할 수록, 상대와 가까이 있을수록 행복하니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는데 그 때부터 내 마음은 정말로 바뀌어버렸어.  

마치 주문에 걸린 것처럼 당신을 숭배하게 되어버렸어.



9. 
당신은 나에 비해 모든 면에서 월등히 뛰어나.  능력도, 집안도, 지혜도, 성품도, (외모 정도는 내가 좀 더?(...) )

열등감을 느끼는 건 아니야.  당신이 이렇게 멋진 사람이 된 것은 다름 아닌 당신의 노력 덕분이니까.  존경하면 존경했지 질투할 이유는 없어. 
 
다만 이전에도 이야기했듯, 주위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볼까.  당신의 가족이 당신을 어떻게 볼까.  이런 것들이 걱정이 돼.  혹시나 뒷담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뒤에서 수근거릴까봐.  당신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힐까봐. (물론, 그 사람들이 우리의 관계를 안다는 전제 하에서.)

하지만 당신의 말대로 오늘은 오늘의 기쁨을 마음껏 누려야 할 때, 내일의 걱정은 내일 닥쳐오라지.

나 역시 당신을 부끄럽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어.  나라는 존재가 당신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당신에게 고맙다고 하고 싶어.  내 삶의 의욕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으니.  당신의 뒤를 쫓아가며, 성장하는 것은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 될거야.



10. 
당신을 좋아해.  정말로.



by Wishsong | 2008/10/22 13:21 | 나와 주변의 일. | 트랙백 | 덧글(10)
트랙백 주소 : http://Wishsong.egloos.com/tb/395049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at 2008/10/22 13:3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Wishsong at 2008/10/23 08:46
^_^ 계속 행복할 수 있기를!
Commented by lhovamp at 2008/10/22 20:02
오, 스스로의 외모에 자신이 있는가!
Commented by Wishsong at 2008/10/23 08:45
낄낄낄
Commented by orches at 2008/10/23 09:33
와아.. 너무 부러워요. 애인 분과 햄볶하시길 ^
Commented by Wishsong at 2008/10/23 11:46
고맙습니다^^
Commented by loony at 2008/10/24 13:17
........핑크빛 마초라니. 핑크빛 마초라니!!!
Commented by Wishsong at 2008/10/24 13:29
사랑을 하면 사람이 달라져요♡
Commented by 붉은미친천사 at 2008/10/24 23:37
누군지 짐작이..^^; 두 분 잘 되기를 바랍니다.
Commented by Wishsong at 2008/10/27 09:13
^^; 고맙습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소망의 나라에는 겨울이 없다. -러시아 속담-
by Wishsong
Calendar
어딘가의 글
찰스 디킨스 :

미루는 버릇은 시간도둑이니, 당장 잡으라.
카테고리
전체
나와 주변의 일.
세상의 일들.
내가 즐기는 것들
RPG
Transhuman Space
읽은 책들
군 이야기(중단)
영어 일기(중단)
미분류
최근 등록된 덧글
저 엔터테인먼트 관련 ..
by Dust at 08/12
생체 군인들이 사이버쉘..
by Dust at 08/12
아ㅏㅇ 앙 기모띠!
by 선주영 at 07/07
단어가 너무 어려운 단어..
by jinim at 05/10
꼭 저대로 실현되기를. ..
by 트랜스휴매니스트 at 11/19
4번은 마스터만 잘 알아..
by Wishsong at 08/06
와, 1,2,3,4 전부 적극..
by 샤이엔 at 08/06
실제로 해 보면 그 "제 때..
by Wishsong at 06/29
제 때 제대로만 내주면 돈..
by 바이라바 at 06/28
감사합니다! 본격적으로..
by Wishsong at 06/25
최근 등록된 트랙백
텀블벅 던전월드 국문판..
by The Adamantine Watc..
토먼트 : 누메네라의 파도..
by The Adamantine Watc..
레이 브래드버리의 명복..
by 잠보니스틱스
브래드버리 별세
by ☆드림노트2☆
FATE 시스템 면모(As..
by The Adamantine Watc..
이 글을 잃고 문득 생각났..
by 지나가던이의 스쳐지나가..
묻겠다! 그대가 나의 마..
by 기아스를 올바르게 사용..
생각해보니, 너드라고 ..
by The Adamantine Watc..
죄, 참회와 회개에 대한..
by The Adamantine Watc..
LG-LU6500 사흘 동안 사..
by The Adamantine Watc..
태그
던전월드 크라우드펀딩 테크누아르 번역 정교회 리뷰 추리소설 포도원의개들 일상 셜록홈즈 RPG 어포칼립스월드 아이패드에어 메카 The_Quiet_Year 만화 기독교 윤창중 오만과편견 메카RPG 누메네라 MECHA 마이크로스코프 Sixth_World 인디RPG FATE TRPG Sagas_of_the_Icelanders 몽쉐귀르1244 비커밍
전체보기
rss

skin by zodiac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