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맨 9권(스포일러 포함)
두껍고 무거운 책을 다 봤다.

휴.  정말로 긴 여정을 달려왔다.   폭탄이 빠앙!  하고 터진 느낌, 혹은 푸짐한 요리의 정찬 코스를 다 먹은 느낌이다.   이제 그 폭탄이 터진 후의 이야기를 보는, 또는 디저트를 먹는 일만 남았다.

1권에서 마법 결사단에 붙들려 몇 십 년간을 갇혀있다가 탈출한지 약 5년.  그동안 등장했던 등장인물들이 까메오로, 혹은 주요 등장인물로 등장하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매듭짓는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사실, 눈치채지 못했던 일들이 줄줄이 튀어나와서 1~8권을 다시 훑어보는 재미와 수고(...)도 만만찮았다.

이 모든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결말.  모르페우스의 파멸로 이어진다.  어차피 8권 마지막에서 그가 죽을 거라는 암시가 있었고, 아예 9권 서문에 "얘 죽는다." 라고 미리 터뜨리기도 해서(...) 놀라울 것은 없었지만 어차피 이번권의 재미는 '모르페우스가 어떻게 되는가?' 보다는 '모르페우스가 어떻게 해서 죽게 되는가?'를 보는 데에 있었다.  친절한 그들의 공격이 시작되면서 꿈결이 무너지는 모습.  모르페우스의 힘겨운 저항과 마침내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다만 이번 권은 맨 처음 것을 제외하고 그림풍이 하나로 통일되었는데, 그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_-;  8권 마지막에 보여줬던 그림풍이었다면 훨씬 더 장엄하고 압도적이지 않았을까.

- 몇 가지 개인적인 생각.

1. 로키와 로빈 굿펠로우의 '배후'는 궁극적으로는 모르페우스 자신(의도하지 않았더라도)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누알라 말대로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기를 원했으니까.  7권 이전의 모르페우스였다면 결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5년 동안 여러가지 일을 겪으면서 냉엄한 초월자에서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모해왔다.  그 절정은 오르페우스의 죽음 후 혼자서 눈물 흘리는 장면이었다. 
 
2. 모르페우스의 마지막 연인이 그 여자일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다.  근데 은근히 어울리더라.

3. 새로 부활한 코린트인은 지이이이이이인짜 멋있다.  진짜로.  로키를 박살내는 장면은 정말 멋졌다.

4. 정작 친절한 그들에 대해서는 별 다른 느낌이 들지 않는다-_-;

5. 리타 지못미.  사실 이번 권의 최대 피해자는 리타다. 



 




by Wishsong | 2009/08/15 10:14 | 내가 즐기는 것들 | 트랙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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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onoma_ at 2009/08/16 15:58

제목 : The Sandman 9th, The Kindly ..
Images Copyright © 1989 Neil Gaiman 슬픈 이야기 대신에 쓸떼없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각주:1] 나는 이틀간 밤을 샜고 논문은 2주째 제자리이며, 선풍기는 고장인데다가 내리던 비마저도 그쳤다. 입은 백색같이 헐었으며, 꽃매미들은 밤낮이 없고, 돈과 맥주는 사이좋게 바닥났다. 적고 보니 그리 특별할 일 없는 일상이긴 한데, 여하튼 좀 지치긴 한 것 같다. 그러나 이토록 조촐한 삶이 그나마 살만한 건 지난주에......more

Commented by qws2 at 2009/08/15 20:12
안개의 계절 편에서 미묘하게 암시하는 듯 하더니 떡밥합체해서 뻥 터졌다는 느낌입니다.
Commented by Wishsong at 2009/08/15 22:29
안개의 계절에서도 모르페우스의 죽음에 대한 암시가 이미 나왔었나요? 한번 더 뒤져봐야겠군요;;;
Commented by 로키 at 2009/08/15 22:15
로키에게 묵념을(..) 신판 코린티안은 나도 마음에 들었음. 꿈의 최후를 지켜보며 자신 외에는 아무도 자신을 파멸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달까. 그걸 누알라한테 떠넘기려는 걸 보면 심지어 초자연적 존재라 해도 찌질한 데는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ㅋㅋ

비극의 묘미는 그 불가항력성에 있는 것 같아.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기에 아무리 경고를 받아도, 두 눈 멀쩡히 뜨고도 피할 수 없는 결말이 진짜 비극이랄까. 그래서 꿈의 마지막 대사 중 하나인 '난 못해'는 그만큼 절절했지. 파괴와는 달리 책임을 절대로 절대로 저버릴 수 없는 성격 때문에 결국 스스로 그렇게 된 거니까. 꿈결에 대해서든,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든.
Commented by Wishsong at 2009/08/15 22:32
누나 말대로 두 눈 멀쩡히 뜨고도 피하지 못하는 것이 정말 비극이지. 특히 그 인물의 신념(특히 고결함)으로 인해 스스로 종말의 길로 가는 것이야 말로 비극의 정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나저나 로키를 박살내는 장면은 정말 멋졌어!
Commented by isorb at 2009/09/02 13:41
덕분에 샌드맨을 구입해서 잘 보고 있다능 =ㅂ=)~
Commented by Wishsong at 2009/09/02 13:43
나 덕분에 지름신이 찾아왔군!
Commented by 데스티 at 2009/09/07 14:04
코린트인 캐간지 ㅇㅇ
Commented by Wishsong at 2009/09/07 15:26
진짜 멋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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