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Guys Making Out : 야오이 TRPG(!)

1937년 스페인. 

국토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공화파와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이끄는 파시스트 반군 사이에서 일 년 남짓 벌어진 내전으로 황폐해졌습니다.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도 파시스트들이 수천 여명의 반대파를 학살하는 한편, 점점 더 극단적으로 치닫는 공화파들이 귀족들과 성직자를 반군의 부역파로 몰아 처형하고 있습니다. 양 측의 군세가 외세의 병력과 무기에 의존해 싸우는 동안 전쟁은 계속해서 폐허와 슬픔만을 낳았습니다.  

폭력과 혼돈의 격류 속에서, 곤살보 히달고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수천 명의 고아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어느 구름 낀 밤, 모든 것이 바뀌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검은 정장을 입은 과묵한 남자가 한밤중에 고아원에 찾아와, 곤살보를 데리고 피레네 산맥 근처 어느 외딴 마을로 데려갔습니다.  

차는 어두운 산길을 지나, 파시스트와 공화파가 지키는 검문소와 바리케이트를 요리조리 피해서,  자갈밭과 비속을 가르면서 마침내 고풍스럽지만 정성스럽게 꾸민 귀족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집 앞에는 아름답지만 공허한 눈빛을 지는 남자가 입가를 살짝 일그러뜨리며 서 있었습니다. 남자의 옆에는 어느 메이드가 주인의 길고 부드러운 머리가 비에 젖지 않도록 우산을 씌워주고 있었습니다.   

운전수가 차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어찌되었든, 그 순간 곤살보는 새로운 집에 도착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곤살보는 대담하게 느낀 바를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 외딴 지방에서 전쟁의 참사를 피할 쉼터를 찾을 수 있을까요? 이 신비하고도 멋진 남자는 누구일까요? 그가 살해당한 곤살보의 아버지에게 졌다는 빚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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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두절미하고, Hot Guys Making Out은(이하 HGMO) 야오이 RPG입니다. 스페인 내전 당시 부모를 잃은 내성적인 소년 곤살로와(수) 멋지고 적극적인 귀족 오노레의() 사랑을 다루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여러가지 RPG가 있지요. 메이드 RPG도 있고 Book of Erotic Fantasy 같은 책도 있는데 야오이 RPG라고 없겠습니까.

...하지만 'Hot Guys Making Out' 이라는 RPG는 저자가 '폴라리스'의 벤 레만 씨가 아니었으면 아무 관심도 가지지 않았을 겁니다. 

BL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이름 높은 디자이너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소재를 어떻게 RPG로 만들었는지 궁금해서 PDF를 구입해보았습니다. ( http://www.indiepressrevolution.com/xcart/product.php?productid=18783&cat=&page= )



1. 책 구성.

HGMO는 33쪽의 짧은 PDF입니다. 책 내용은 간략한 배경 및 규칙 설명, 인물 설명, 플레이 가이드가 담겨있습니다. 읽기는 쉽지만 책 일러스트는 그저 그렇네요. 이왕 BL을 소재로 할 거라면 좀 더 예쁜 일러스트로 해줄 것이지..


2. 규칙

HGMO는 엄밀히 말하자면, 전통적인 RPG라기보다는 '스토리게임'입니다. 성공/실패 및 갈등을 다루는 규칙 대신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데에 더 중점을 둔 규칙이지요. 

HGMO는 트럼프 카드를 사용해서 게임을 진행합니다. 2명에서 4명 사이의 참가자들이 즐길 수 있으며, 플레이 시간은 약 1~2시간 정도 걸립니다.

참가자들은 카드를 내놓으면서 자신이 맡은 캐릭터의 심리나 행동을 묘사하고, 다음 사람은 그 뒤를 이어 수가 같거나 높은 카드를 내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합니다. 각 캐릭터마다 특수 카드 한 장이 있는데, 그 특수카드를 발동하면 격정적인 신체적/정신적 친밀함(...)을 묘사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카드가 다 떨어지거나 더 할 이야기가 없다면 한 장면이 끝이 나고, 카드를 모두 섞고 재분배받은 후 다음 장면을 준비합니다. 해당 플레이에 등장한 위험 요소가 없어지거나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질 때, 게임은 끝이 납니다. 


3. 얼마나 쉽게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가?

마눌님과 함께 실제로 플레이를 해본 결과 정말 훌륭하게(...) 즉석에서 BL 한 편이 만들어지더군요. 규칙 자체는 무척 간단한데 BL물의 핵심 코드를 잘 잡고 있습니다. 등장 캐릭터들은 공/수가 뚜렷하게 나뉘어져서 그에 맞게 행동을 해야 하며, 격정적인 장면은 이런 저런 이야기가 누적된 다음 튀어나오도록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가. 위험 요소가 등장하지 않을 경우 이야기가 지루해질 수 있다.
HGMO에서는 에이스 카드가 등장할 때마다 위험 요소가 점점 더 뚜렷해지며, 이 문제에 맞서 싸우면서 둘 간의 사랑을 이루는게 게임의 핵심 내용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에이스 카드가 등장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계속 이야기를 계속 해야할 수 밖에 없더라고요.  

나. NPC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가 없다.
HGMO의 구조는 주연 두 명 + 조연 두 명이며, 참가자들이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면서 자신의 인물 관점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그 외 다른 인물들과의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플레이어가 두 명일 경우 조연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대화 장면은 어떻게 할지 이런 저런 점들에 대한 설명이 좀 부족해보이기는 했습니다.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실 굳이 야오이 RPG일 필요는 없어요. 그냥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없는 커플이라면 이 이야기로 표현이 가능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이라든지, 남북전쟁 이전의 미국 흑백커플처럼. 이 게임에서 야오이는 단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세일즈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4. 실제 플레이.

아래는 마눌님과 한번 돌려본 이야기입니다. 장면 1을 제외하고는 모두 즉석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누가 공을 했고 누가 수를 했는지 알아맞춰 보세요 ㅎㅎ).

장면 1. 어느 비오는 날, 곤살로는 오노레의 집에 도착합니다. 곤살로는 오노레의 강인하면서도 신비한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장면 2. 다음 날. 둘은 저녁식사를 같이 합니다. 식사 중에 곤살로는 이 집에서 어떻게 지내야 할지 오노레에게 묻고, 오노레는 "너는 내 후계자가 되기 위해 신사의 소양을 배울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장면 3. 곤살로는 오노레와 함께 승마를 배웁니다. 그때 곤살로의 말이 벌에 쏘여 갑자기 날뛰고... 낙마할 뻔한 곤살로를 오노레가 구출합니다. 곤살로는 두근두근합니다. 그날 밤, 곤살로는 이상한 악몽을 꿉니다. 놀라서 일어났을 때, 눈 앞에는 오노레가 어깨를 붙잡으면서 "괜찮느냐?" 라고 묻습니다.

장면 4. 비가 오는 날, 곤살로는 하녀 마리아와 함께 시내에서 이런저런 물건을 사러 갑니다. 곤살로는 마리아에게 오노레에 대한 이야기를 이것저것 묻고, 한편 오노레는 곤살로를 데리고 가려고 하는 친척들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곤살로의 앞에는 오노레가 직접 마중을 나오고... 곤살로가 든 짐을 자신이 듭니다. 그 때 갑자기 근처 나무에 벼락이 떨어지고, 나무가 부러져서 곤살로의 머리로 떨어지려고 합니다. 위기의 순간 오노레가 곤살로를 안고 급히 옆으로 구릅니다. 그때 우연히 곤살로의 입술이 오노레의 뺨에 스치고...!

장면 5. 그날 밤 곤살로는 몽정을 합니다. 오노레도 야한 꿈을 꾸고 당혹한 얼굴로 일어납니다. 곤살로는 당혹한 얼굴로 몰래 세탁실에 가는데... 마리아와 마주칩니다. 마리아는 차가운 얼굴로 "주인님과 가깝게 지내지 마." 라고 말하고... 곤살로가 우물우물 거릴때 오노레가 내려와서 마리아를 엄하게 꾸짖습니다.

장면 6. 며칠 후 곤살로는 오노레에게 자신을 그냥 하인처럼 대하라고 했지만, 오노레는 "나는 너를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데려왔다. 네 아버지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 라고 대답하고는, 곤살로의 말을 무시합니다.

장면 7. 다시 며칠 후 둘은 하인들을 이끌고 사냥에 나섭니다. 곤살로는 뒤에서 마리아가 계속 노려보는 걸 느낍니다. 오노레는 여우 한 마리를 사냥하고 곤살로에게 선물로 줍니다. 갑자기 폭우가 내려서 사냥이 끝납니다.

장면 8. 폭우에 홀딱 젖은 곤살로는 앓아눕습니다. 마리아가 병간호를 하고 있는데... 오노레가 마리아보고 나갈 것을 명합니다. 그리고는 둘만 있을때 갑자기 오노레가... (19금).

장면 9. 곤살로는 자신과 오노레 사이에 일어난 일에 당황해 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곤살로는 죄책감과 두려움에 휩싸였지만, 한편으로는 기쁨과 쾌락을 느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전율합니다. 그때 오노레가 곤살로의 방에 들어와 다시 대담한 짓을 합니다. 그때 뒤에서 마리아가 "두 사람은... 이러면 안 돼요!" 라고 강하게 말하고... 오노레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곤살로는 결심을 하고 마리아에게, "당장 나가세요." 라고 말하면서 오노레에게 입을 맞춥니다. "나는 오노레님을 사랑합니다." 마리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방을 나서고, 두 사람은 좋은 시간을 가집니다.

...끝. 이 걸 하면서 마눌님과 저랑 몇 번이나 배를 잡고 "오글거려! 으앜 ㅋㅋㅋㅋ" 라고 웃었는지 모르겠습니다.



5. 평가 ( 총계 10점 만점)

- 얼마나 보기 쉬운가? : 읽기 쉽습니다. 특별히 눈에 띄지는 않습니다(2/3)
- 규칙은 멋진가? : 아주 간편하면서도 BL물을 만들기 위한 요소를 확실히 갖췄습니다. 독특하면서도 쉽습니다. 다만 카드에 따라서 이야기가 늘어질 수 있습니다.(2.5/3)
- 얼마나 쉽게 플레이할 수 있는가? :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갈지를 잘 설명했지만, 위에서 말한 몇몇 불명확한 부분이 좀 아쉽습니다.  (3/4)


평가 : 2+2.5+3 = 7.6/10
by Wishsong | 2013/04/08 00:23 | RPG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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