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새벽(Dawn of FATE) 정독 후 리뷰


우리 나라 최초의 Fate 기반 RPG인 운명의 새벽이(이하 DoF) 공개됐습니다. 제작 과정 동안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출시일이 많이 늦어졌지만, 힘든 경험으로 노하우를 체득한 만큼 다음 작품은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작품이 나왔는지를 한번 볼까요? 


들어가기 전 주의 사항 : 이 리뷰는 아직 플레이 테스트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적었습니다. 실제 플레이 후에는 일부 평가가 변할 수도 있습니다.

 

 

겉모습


책 디자인은 마음에 듭니다. World of Darkness 시리즈처럼 '현대 배경의 전기물'이라는 느낌이 확 나네요. 그리고 책이 잘 정돈된 느낌이 납니다. 특히 삽화가 책의 분위기를 잘 살려주는데다 군데군데 들어간 만화 컷은 배경과 규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예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작진이 책 디자인 때문에 많이 고생을 했는데, 그만큼 고생한 보람이 있습니다. 


다만 조직 구성원 설명 장에서 삽화가 빠진 인물의 초상화를 No Printing이라는 칸으로 처리한 것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뭔가 오류라도 있나 생각했지만, 확인해보니 삽화가 없는 인물들은 일괄 그렇게 처리를 했다고 하네요. 개인적으로는 오해가 없도록 빈칸을 없애고 그냥 글만 적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제한된 분량에 최대한 많은 내용을 담으려 하다 보니 글자가 빡빡하게 차서 가볍게 읽기에는 조금 부담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못내 이 부분이 아쉽습니다. 


또한 책 두께에 비해 표지와 종이가 너무 얇은 것도 이 책의 큰 단점입니다. 아는 지인은 “종이가 너무 하늘하늘 거려서 전화번호부 책 같다.”라고 평했습니다. 


특이하게도 DoF는 겉표지를 벗기면 표지 뒷장에 캐릭터 시트가 인쇄되어 있는데, 보기에는 조금 이상하지만 분명 캐릭터 시트를 복사할 때는 편할 것 같습니다.



책 내용


책 내용은 크게 배경 세계 - 규칙 - 마스터 가이드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 배경 세계

운명의 새벽 RPG는 기본적으로 멸망을 앞둔 세계에서 진실을 알고 있는 각종 능력자들이 서로 협력하고 때로는 반목하며 멸망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이들 능력자들은 멸망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여섯 가지 성향의 '구도자'로 나누어지며, 각자 자신의 성향대로 행동합니다. 구도자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비전의 구도자 : 멸망이 오기 전 귀중한 지식과 존재를 찾아내고 수호한다.

균형의 구도자 : 현 상태가 가장 이상적이다. 현재 상태에서 멸망을 향해 나아가서도, 도망쳐서도 안 된다.

정화의 구도자 : 멸망의 원인을 찾아 제거해야 한다.

초월의 구도자 : 멸망과 맞서 싸우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해야 한다.

혁신의 구도자 : 멸망의 힘을 이용해 오히려 더 발전해야 한다.

멸망의 구도자 : 위 다섯 가지 구도자들 중 선을 넘은 극단주의자들. PC가 선택할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멸망의 구도자를 제외한 다섯 가지 구도자의 차이점이 흐릿하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구도자의 설명이 배경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제작진 역시 많은 공을 들여 구도자들 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설명했지만 그렇지만 제가 보기에는 여전히 미진합니다. 예를 들어서 자신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멸망의 힘을 이용해 중요한 지식을 찾아내고 수호한다면, 이는 초월의 구도자인지 혁신의 구도자인지 비전의 구도자인지? 한 가지 문제를 두고 사람이 가진 동기와 행동방식은 여러 가지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각 성향간의 차이를 좀 더 알기 쉽게 만들어서 뚜렷하게 구분을 지을 수 있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와 능력자들의 세력 소개는 이 책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 중 하나입니다. 이면의 세계가 형성된 배경, 각 세력 간의 갈등과 행동 동기가 잘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 여지가 충분해 보였습니다. 특히 이야기 소재가 될 만한 각 요소들을 면모로 이용하기 쉽도록 하나의 구절로 만든 부분은 페이트 규칙을 잘 활용한 훌륭한 사례입니다.

    

2) 규칙

DoF는 ‘현대 전기물’ 장르를 충실하게 구현한 RPG입니다. DoF에서는 각 캐릭터가 자신의 이념과 힘의 근원, 소속 조직을 필수적으로 선택하게 해서 각 캐릭터의 배경과 행동 동기를 뚜렷하게 차별화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부분이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실제로 플레이 중 중요하게 사용할 수 있는 규칙이라는 점도 높게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캐릭터 제작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준 점도 좋습니다. 특히 면모와 이능 부분에서 즉각 활용할 수 있는 예시를 많이 준비한 부분은 DoF의 큰 장점입니다. 당장 캐릭터를 내놓고 싶은 성격 급한 사람을 위해 즉석에서 내놓을 수 있는 캐릭터 유형을 준비한 것도 마음에 듭니다. 


기능 부분에서도 DoF는 지금까지 본 RPG 규칙과는 두드러진 차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DoF에서 기능은 한 번 익혔다고 해서 배운 기능의 실력과 비중이 그대로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World of Warcraft에서 한 번 배운 특성을 초기화할 수 있는 것처럼, DoF 역시 이야기의 속에서 필요하다면 (대가를 치르고) 자신이 배웠던 기능을 새롭게 바꿀 수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책벌레 학자가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총잡이가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현대 전기물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전투와 이능 효과에서도 DoF는 충실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물리적인 갈등(전투) 외에도 설전 및 교섭, 심문 등을 위한 정신 갈등, 추격전을 구현하기 위한 고속 갈등 규칙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능 효과 면에서 DoF는 총 65개의 이능 효과를 가지고 있는데, 잘 조합한다면 웬만한 현대 전기물에 나오는 이능 효과는 모두 구현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아쉬운 점은 분명 있습니다. 규칙이 상세한 만큼, DoF가 처음 약속했던 ‘초보자들도 하기 쉬운 규칙’에서는 어느 정도 멀어졌습니다. DoF 제작 초기에 모델로 삼았던 SoF보다도 더욱 복잡해졌지요. 물론 DoF 안에서도 초보자들을 위한 간략 규칙이 존재하지만, 책 대부분의 내용이 규칙을 완전히 활용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만큼 차라리 따로 분리를 해서 별도의 자료로 만들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3) 마스터 가이드

DoF는 마스터를 위한 자료를 충실하게 준비했습니다. 즉석으로 내놓을 수 있는 NPC 예시는 물론이고, 좀 더 커다란 이야기를 하기 위한 조직 규칙 등 마스터가 (모든 규칙을 활용할 의욕만 있다면)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DoF에서 마스터가 가장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은 ‘12장 : 마스터 가이드’ 입니다. 이 장에서는 단순히 게임 데이터 뿐만 아니라 마스터가 실제로 플레이를 운영할 때 어떻게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는지, 플레이 중 어떻게 이야기를 이끌고 다른 플레이어를 대할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굳이 단점을 꼬집는다면 DoF에 나와 있는 기본 설정 외에 다른 오리지널 설정으로 플레이를 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 정도입니다.



그래서...


긴 제작시간을 기다릴 가치가 있었느냐? 라는 질문에, 저는 “그렇다”고 하고 싶습니다. 특히 DoF는 제작자들의 처녀작이면서도 상당히 훌륭한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다음 작품은 더욱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위 내용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제한된 분량에 어떻게든 많은 내용을 전달하려고 빼곡하게 내용을 집어넣은 결과 본래의 목적 중 하나인 ‘초보자들도 쉽게 할 수 있는 규칙’과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점은 못내 아쉽습니다(특히 DoF 규칙의 기초가 된 페이트 코어 규칙이 간편하고 깔끔한 규칙으로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한국에서 이 부분은 아직 던전월드를 따라갈 수 있는 RPG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월야한담이나 월희 등의 전기물을 하고 싶다, 라는 분에게는 DoF를 보라고 자신 있게 권할 수 있습니다. 

by Wishsong | 2014/03/26 00:16 | RPG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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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夢影 at 2014/03/26 13:49
전기물 하기 참 좋아보이더라고요. 리플레이도 재밌었고... FATE 치고는 좀 복잡하지만 몇번 플레이 해보면 감이 잡힐 것 같은 수준이었습니다. 다만... 여러차례의 독자교정을 거쳤음에도 책으로 보니 오타가 자꾸 눈에 보여서... orz 일정상 실제로 룰을 제작하고 실제 집필을 마친 후 시스템 수정하느라 오탈자 교정을 볼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을 것 같기는 했지만 눈물이.. ㅠ,ㅠ
Commented by Wishsong at 2014/03/26 17:14
오타가 많은 것도 지적사항이네요. ㅎㅎ
Commented by 에테 at 2014/03/27 22:36
오타가 많은 것 또한 이 책의 백미입니다!!!
Commented by Wishsong at 2014/03/28 01:38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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